영어1도 못했던 내가 전하고픈 현장 영어로 살아남기-1편

저는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 중에서 꼭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의사소통, “영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느끼는 영어에 대해 제 소회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전투력만 따지고 보면 한국인들은 세상 어디에 보내도 살아 남는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항상 일 잘하는 상위에 랭크되겠죠. 하지만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생활하는 것에 더해 일도 척척 해야 한다면 그때부턴 얘기가 달라집니다.

영어가 꼭 필요하지 않던 시절

어릴 때 외국에서 살았거나 외국인 친구를 한동안 사귀었거나 어학 연수 또는 유학을 하지 않는 이상 영어의 공포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환경도 아니었어요.

대학 때 그 흔했던 단기 어학 연수조차 다녀오지 않아 영어구사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바닥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학생 때 고시 공부를 한다고 시험 영어에만 몰두하던 때라 학교 졸업할 때까지 토익 시험 한번 보지 않았었죠.

IMF가 쓸고 간 직후 저는 공채 시험을 통해 지금 다니는 곳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근무했던 부서는 영어를 쓸 일이 전혀 없는 부서여서 매년 초에 올해 결심으로 “영어 공부하기”를 리스팅하는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2~3달 후에는 사는 게 바빠서 잊고 지내다 또 한해가 지나가면 새로운 결심을 하고~. 보통 공부 못하는 얘들이 교과서 앞쪽만 까맣잖아요. 딱 그 모양이었죠.

영어라는 악몽과 마주하기

그러던 제가 입사후 10년이 지난 40이 넘는 나이에 국제 부서로 배치를 받고 나서 영어의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서원들이 모두 외국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어릴 때 외국 생활을 했던 친구들이라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을 못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영어라는 악몽과 마주하기

정말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습니다. 보직자의 위치라 자존심은 강한데,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라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잘 알아듣지도 못해서 담당자를 바꿔주기 바빴습니다. 자존감 바닥, 아니 지하 깊숙한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심정이었죠. 부서를 옮겨야 겠다는 고민도 매일 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나름의 노력

서점에서 좋다는 책은 거의 다 사보고, 인강과 전화영어는 기본.

종로에 있는 유명한 학원의 새벽반 수강을 해서 한번도 거르지 않고 출석하고, 집에 퇴근해서도 영어만 틀어놓고 살았습니다.

그런다고 갑자기 안들리던 영어가 잘 들렸을까요? 전혀 늘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할수만 있다면 송곳으로 양쪽 귀를 뚫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한줄기 빛

그렇게 6개월을 버텨갈때 한줄기 빛을 발견했습니다. 영어를 잘하게 되었냐구요?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그럼 그 빛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도 똑같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는것을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평가받은 사람들도 언제나 영어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고 있더라구요. 다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상당히 위로가 되더군요.

그래서 전략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영어는 생활화하되 조급해하지 말고 “일단 살아남자”.

옛말에 “강해서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10년이 흐른 지금, 저는 외국에서 Chief Level까지 승진했습니다. 여전히 영어소통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두번째 글에서 어떻게 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갔는지 제 경험을 토대로 방법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굿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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